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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발해#초간단 총정리

박선생과 함께하는 사회

#통일신라#발해#초간단 총정리

지안이네 백.과.사.전 2021. 2. 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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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이 신라는 성립부터 멸망까지 무려 1천년의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역사상 거의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긴 세월 동안 나라를 유지한겁니다.

어찌되었든 일단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가서 신라는 지난번에 설명한 것처럼 당나라와 협력관계를 맺었는데요.

그 당나라와 협력관계를 맺는데 가장 도움을 주었던 인물이 바로 김춘추입니다.

그는 군사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유신의 도움을 받아서 귀족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라서 결국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리고 당나라와 협력해서 고구려도 멸망 시키고 다시 당나라를 쫒아 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이 왕의 중심으로 모여 왕권이 상승했던 것 입니다.

이 민심이 뭉치지 않았다면 아마도 삼국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삼국의 통일이후에도 왕권이 매우 강했지요. 그래서 진골들이 왕의 독주를 참지 못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진압되고 이 계기로 왕권은 더더욱 강화되었답니다. 한마디로 왕권은 거의 신 급이었던 겄이죠.

통일신라 후 정치 체제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화백회의의 기능을 줄이고 전국을 9주로 나누었으며 오구려, 백제 귀족들을 지방으로 보내서 지방의 힘까지 강화 시켰지요.(WOW)

무엇보다도(통일신라초기에) (신문왕)은 국가 수입을 늘이기 위해서 관료전과 정전을 실시하고 녹음을 폐지하였지.

 그런데 중대부터는 녹음이 부활해 점점 왕권이 약화되었지.

 

통일신라 대외 교류

 당과의 교류 : 나·당 전쟁 이후 관계 회복
* 사신과 유학생, 승려, 상인 등이 활발하게 왕래 → 활발한 문화 교류, 해상 무역 발달
* 신라인의 당 진출 : 중국의 산둥 반도와 화이허 강 일대에 신라방(신라인의 집단 거주지), 신라소(신라방을 관리·감독하는 관청), 신라원(신라인의 사찰) 형성


 일본과의 교류 : 당과 일본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이익, 신라의 불교문화 전파, 일본은 신라의 배를 이용하여 당에 왕래


 주요 무역항
* 당항성(경기도 화성), 영암 : 교역의 중심지
* 울산항 : 국제 무역항으로 번성, 아라비아 상인까지 왕래


 장보고의 해상 활동 :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 → 당과 신라, 일본을 연결하는 해상 무역권 장악

 

발해는 무슨 나라였을까?

우리 민족의 역사상 가장 큰 대제국을 건설한 나라이었어요.

발해는 대다수가 말갈족이고 만주에 세워졌던 나라에요.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지 약 30년 후인 699년에 동북지구의 당()나라 세력이 쇠퇴한 틈을 타

백두산(白頭山) 동북지방에 근거를 둔 말갈족과 고구려 )대조영(大祚榮)

 창건하였으며 926 멸망하였어요.

고구려가 668년 나당연합군(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뒤 대동강 이남 지역은 신라에

귀속되었으며​, 요동 지역의 그 방대한 영토의 대부분은 당()나라의 지배 밑에 들어가 안동도호부

(​安東都護府​) 관할 하에 놓였어요.

주로 지방호족 세력이 이동의 중심에 있었는데, 고구려 출신으로서 당의 장수로 활약한 고선지

나 이정기 장군, 그리고 발해의 시조인 대조영(大祚榮) 가문이 이때 이주됐다고 할 수 있어요.

↓아래는 발해의 최대 영역 지도 입니다↓

 

 

발해는 나라의 안정을 되찾은 후, 당의 문물 제도를 받아들여 세련된 제도를 갖추는 데 힘을 기울였다. 발해는 독자적인 연호를 쓸 정도로 왕권이 강화되면서 정치 제도를 정비하였어요.

발해의 3성은 정당성(政堂省), 선조성(宣詔省), 중대성(中臺省)인데, 이것은 당 왕조의 상서성(尙書省), 문하성(門下省), 중서성(中書省)에 해당해요.

정당성은 정령(政令)을 행하는 최고의 행정 서무기구였다. 선조성은 황제의 시종 혹은 고문의 역할을 하였고, 과실에 대한 간언도 하였다. 중서성은 정령을 기초하고 제정하며 정책을 심의하는 일을 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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